1. 산 이 름 : 가리왕산 (加里王山, 100대 명산)
2. 위 치 : 강원도 정선군(평창군)
3. 높 이 : 1,561미터
4. 산행일시 : 2019. 8. 10(토) 10:45 - 17:28 (6시간43분, 순수산행시간 5시간 이내)
5. 산행거리 : 13Km
6. 산행코스 : 장구목이 입구 → 이끼계곡 → 임도 → 주목군락지 → 장구목이 삼거리 → 상봉(정상) → 마항치삼거리 → 어은골 → 심마니교 → 가리왕산자연휴양림 입구
7. 동행자 : 인천매일산악회 36명
- 이번주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2013년 100대명산을 마무리한 후 이러구러 하다보니 다시 오른 100대명산이 50여개를 헤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저히 갈 곳이 없을 때는 "100대명산 2번 오르기"나 시도해 봐야겠다는 쥐어짜기(?) 목표를 언제부턴가 염두하게 되었다. 그런 연유에서 따라나선 곳이 오늘은 가리왕산이다.
- 폭염 절정기의 가리왕산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이끼계곡의 찬바람과 예전 산행의 기억이다. 6년 전 무더운 날씨에도 정상까지 2시간 반만에 무난히 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3시간반이면 충분하겠거니...
나름의 합리적(?) 계산이 엉뚱한 이유로 완전히 망가진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나는 오늘 가리왕산에서 난생처음 느껴 본 사상 최악의 컨디션으로 완전히 죽다 살아 난 것이다.
▼ 들머리는 익숙한 장구목이 입구. ▼
▼ 오늘 두번째 따라 온 이 산악회는 하산시각만 지정해 주고 나머지는 모르쇠이다.
시간을 넘기면 그냥 출발한다는, 나름 삭막한(?) 산악회인데 문제는 늘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하산후 알탕과 소주 한 잔이라도 먹으려면 엄청 서둘러야 한다. ▼
▼ 나무다리가 깔끔하게 바뀌어 있다.
이 지점까지 금방인 줄 기억했더니 상당히 멀게 느껴진다. ▼
▼ 이끼계곡의 천연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고 콸콸 흐르는 물은 거울처럼 맑다.
산행이고 뭣이고 이런 자리에 풍덩 빠져서 하루를 보내고만 싶다. ▼
▼ 내가 최선두에 있었는데 대략 1km를 지나면서부터 뒷사람들에게 추월당하기 시작한다.
아, 역시 나는 더위에는 약한가 보구나.. 맘을 편하게 갖기로 한다. ▼
▼ 가리왕산의 밀림은 여전히 경외심을 품게 하고. ▼
▼ 최근 잦은 비로 우렁찬 물줄기를 뽐내는 이끼계곡도 변함이 없다. ▼
▼ 갈수록 급격히 힘이 빠져서 자주 쉬어 간다. ▼
▼ 오늘따라 뒷목 부근이 아파오면서 배낭과 카메라가 굉장히 무겁게 느껴진다.
거의 지리산 종주할 때 80리터 배낭을 맸을 때처럼 고통스럽다.
결국 중간에 앉아 맥주 캔까지 하나 따서 마시며 또 한참을 쉬었다. ▼
▼ 저런 구조물이 보이면 임도가 가까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
▼ 이번 기억은 정확했다.
예전에는 6월 중순이었지만 이끼계곡 사진을 찍으며 노닥거리다 왔어도 1시간반 정도가 걸렸었다.
오늘은 1시간 45분. 그럭저럭 선방했다고 자위해 본다. ▼
▼ 여기부터 정상까지는 쉬엄쉬엄 가도 1시간이면 충분했던 거리이다. ▼
▼ 그런데 아무래도 몸이 이상하다.
10여년간 수백번의 산행중에도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증상이 나타난다.
아무리 자주 쉬어도 몸이 천근만근, 회복되지가 않는다. ▼
▼ 죽은 나무를 우아하게 분해하는 이끼와 곰팡이의 포식활동도 여전하고. ▼
▼ 모든 그림과 환경은 여전한데 내 컨디션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허기 탓인가 하여 아예 자리를 잡고 식사겸 20여분을 쉬며 후미까지 모두 올려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가뿐하게 일어.....서려는데 머리가 띵하며 눈앞이 새까매진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앉았다 일어나면 현기증이 생기며 아뜩해 지곤 했었다...
아무리 쉬어도 점점 증상이 심해지다니... 아하, 문득 깨달음이 생겼다. ▼
▼ 어찌나 몸이 힘들었는지 5분을 못 걷고 주저 앉는다.
쉬고 일어나면 눈앞이 까매질 뿐 전혀 회복이 되질 않는다.
이틀전 새로운 고혈압약을 처방받아 새벽에 한 알 먹었는데 오늘따라 작은 바나나까지 3개를 먹었더니 저혈압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원인은 겨우 짐작을 했지만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급경사를 오르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
▼ 가도가도 길은 끝이 없다.
긴 산행에서 물이 떨어지거나 장염 증세로 고생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
▼ 시간마저 촉박해진 채 가장 후미로 처졌으니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삼거리에 이르렀다.
식사중이던 후미 두 사람이 뭘 먹으라고 자꾸 말을 시키지만 정말 대꾸할 힘이 없다.
"말할 힘도 없다"는 관용적 표현이 이런 것이었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5분여를 앉았다 일어나니 또 하늘이 샛노랗게 변한다. ▼
▼ 야생화가 지천이지만 쳐다 볼 마음의 여유가 없고. ▼
▼ 멀리 중봉, 하봉 방향으로 파헤쳐진 스키장 건설 현장이 보인다. ▼
▼ 정상에 널부러져 앉아 있던 중 근처의 단 한 사람마저 일어날 채비를 하길래 서둘러 사진을 부탁했다.
역시 일어나는 순간 눈앞이 까맣게 변한다.
이번에는 강도가 심하여 이러다가 사람이 쓰러지는구나 싶다.
그렇더라도 사진 찍을 때는 멀쩡한 척을 해야 한다. ▼
▼ 6년 전 2시간반에 올라왔던 코스를 4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올라 섰다.
누군가 가리旺산의 날 일(日)자를 지우려 한 흔적이 보인다.
18세기 고서에도 "王"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뜬금없는 "旺"은 일제시대 작품이 확실하다.
새삼 쪽바리들의 지독함을 돌이켜 본다.
그래도 최근에는 눈물겹게 고마운 아베, 일본회의 아그들 때문에 일본 관련 뉴스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
▼ 파노라마도 대충 찍고. ▼
▼ 가야 할 하산길.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으니 고생은 끝났으려니.. ▼
▼ 마항치삼거리까지도 꽤나 길게 느껴진다.
내 뒤로 이미 두 명은 있지만 빨리 후미 몇 사람을 따라 잡아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이런 산악회에서 꼴찌를 하면 낭패거니와 하산 시각에 맞추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
▼ 내리막에서도 전혀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 탓에 애를 먹는다.
저혈압 상태가 원인이었음을 점점 확신한다. ▼
▼ 갈 길은 아직 아득하고. ▼
▼ 아까 추월했었던 후미 세 사람을 겨우 다시 따라 잡았다.
내가 쉬는 동안 꽤나 빨리 진행한 모양이다.
그들도 행여 버스를 놓칠까 죽기살기로 서두르는 것이다. ▼
▼ 징검다리를 건너면 잠시 한숨을 돌린다.
급경사 내리막은 거의 지났으니 나머지 길은 속도를 낼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
▼ 그런데 이것이 뭔 일인가.
갑자기 오르막 구간이 나타난다?!.. ▼
▼ 전혀 예상치 못한 오르막 구간에서 마지막 체력이 방전되어 버렸다.
이제는 다리까지 후들거린다.
어찌나 힘들었는지 이 구간에서는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
▼ 징검다리 바위에 앉아 10여분을 쉰다.
앉아 있을 힘도 없어 그저 눕고만 싶다.
뒤따라온 후미 한 사람이 죽어가는 표정으로 하소연을 하는데 도저히 말이 안 나온다. ▼
▼ 비가 많이 온 탓에 다리도 무너져 버렸고. ▼
▼ 드디어 가리왕산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17년 전 숲속의집 3개를 예약하여 온가족이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왔던 곳이다.
2002년만 해도 국립 휴양림이 선착순 온라인예약 방식을 처음 도입했던 시기여서 인터넷에 익숙한 IT회사 대표였던 나는 누워서 떡먹는 것처럼 손쉽게 숙소를 잡곤 했다.
물론 자연휴양림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
▼ 이걸 심마니교라 했던 것이구나.
이 다리 밑이 최고의 물놀이 자리였던 기억이 선명하다. ▼
▼ 심마니교에서 내려다 본 물자리.
저기에서 풍덩, 알탕을 즐기려 했건만.. 시간에 쫓겨 그저 내달려야 한다. ▼
▼ 오늘의 꼬래비 동지들.
혼자 꼴찌가 아닌 것을 서로가 천만다행으로 여겼을 것이다. ▼
▼가리왕산 쉼터가 생겼음을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긴가민가 했었다.
후일 찾는 분들은 휴양림 바로 입구에 있음을 참고하실 필요가 있다. ▼
▼ 인근 부녀자들이 운영한다는 가리왕산 쉼터는 메뉴판을 보듯이 엄청나게 착한 가격이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지만 이곳도 역시 그냥 지나쳐야 한다. ▼
▼ 버스 있는 곳까지는 또 한참을 걸어 가고. ▼
▼ 정확히 15분 늦게 버스에 탑승한다.
버스 안은 쉰내가 가득하니 대부분 정신없이 차에 올라 탄 모양이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갈아 입지도 못한 채 버스가 출발한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4시간만에 집에 돌아 왔다.
엉뚱한 혈압약 한 알 때문에 일생일대의 고난을 겪었지만 덕분에 소주는 하루종일 반 병 밖에 마시지 않았다(못했다??).
산악회 따라와서 술 적게 먹은 걸로는 신기록을 작성한 역사적(?) 하루를 마감한다. ▼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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