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피아골 단풍 구경을 위해 예상치 못한 허겁지겁 고행과 밋밋하고 싱거운 느낌이 교차하는, 미묘한 遊山의 하루를 즐기다. 』
■ 산행기록 개요
1. 산 이 름 : 지리산 피아골(智異山, 산림청 100대명산)
2. 위 치 : 전라남도 구례군
3. 높 이 : 1,336미터
4. 산행일시 : 2023. 10. 28.(토) 11:15-15:30 (4시간15분, 순수산행시간 3시간40분 이내)
5. 산행거리 : 13.5Km
6. 산행코스 : 노고단로 도로 → 성삼재 → 노고단고개 → 돼지령 → 피아골삼거리 → 피아골대피소 → 삼홍 → 직전마을 → 천왕봉산장 주차장
7. 동행자 : 마누라(신사산악회 43명)
■ 산행 이동 경로 (GPS 궤적)
■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 피아골 소개
- 피아골은 연곡사 입구에서 지리산 주능선에 이르는 약 20킬로미터에 달하는 계곡이다. 반야봉에서 삼도봉을 거쳐 불무장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노고단에서 왕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산줄기에 둘러싸인 깊은 계곡, 해발 1,000미터를 훌쩍 넘는 이름 꽤나 알려진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모여 덩치를 키운 뒤 연곡천을 따라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골짜기가 깊다보니 골골이 펼쳐진 주름 사이에 숨을 곳이 많았던 까닭일까. 임진왜란, 구한말의 의병, 빨치산과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피를 가장 많이 흘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피의 골짜기 혹은 지리산의 울음주머니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찍이 연기조사가 피아골 입구에 부도(浮屠)1)가 아름다운 연곡사를 세운 것은, 이후 이 골짜기에서 골의 깊이만큼이나 혹은 주름의 켜켜이 만큼이나 아픈 역사의 질곡을 미리 예견한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질곡의 생채기를 보듬고, 그들의 영혼을 달래려는 깊은 자비심 때문이었을까? 독특한 이름의 피아골은 언뜻 적군과 아군, 곧 피아(彼我)의 골짜기로 비치지만 초입에 있는 직전마을, 즉 피(稷)를 가꾸는 밭(田)이 있는 골짜기에서 유래됐다.
피아골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0월이면 현란한 색의 축제가 벌어진다. 산이 붉게 타고, 물도 붉게 물들고, 이 가운데 선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손꼽는다. 일찍이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지리산 자락, 덕산의 산천재에 터를 잡았던 남명 조식 선생도 삼홍에 취해 시 한수를 남겼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물든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 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남명 조식의 ‘직전삼홍소(稷田三紅沼’) - 한국산림문학회 문집(이현복) 참조
https://m.khan.co.kr/article/200110231724321
■ 지리산 피아골 산행 후기 및 사진 정보
- 작년 이맘때 지리산 반야봉과 뱀사골을 찾았었다. 올해는 피아골로 하산하는 편안한 단풍 나들이를 즐겨 보기로 했다. 결혼기념일까지 산에 끌고 다닌다는 마누라의 푸념을 들어야 했지만 지리산의 가을을 여유롭게 즐겨 보자며 사정사정 모셨던(?) 오늘의 코스인데...
- 성삼재 오르는 버스가 천은사로 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오른다 했더니 결국 소동이 벌어졌다. 내려오는 차들과 뒤엉켜 성삼재 1.3km전방 도로에서 사실상 멈춰버린 것이다.
게다가 노고단고개에서 출입제한하는 시각이 있다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노고단고개를 여러번 통과해 봤지만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이리하여 버스가 막힌 지점부터 노고단고개까지 4.5km 이상 오르막을 45분내에 주파해야 하는 황당한 미션이 주어졌다. 마나님 모시고 온 마당에 죽기살기로 달려야 할 것이냐, 일찌감치 포기하고 피아골계곡이나 노니는 속편한 관광모드로 전향할 것이냐, 절체절명(?) 선택의 기로에 내몰린 것이다.
▼ 신발끈도 못 매고 성삼재까지 허겁지겁 달려 왔다.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등산화 끈을 조이고, 잠시 숨을 돌리고 나니 벌써 11시30분이다.
일단 달려보자며 오르막 포장도로 1.3km를 정신없이 걸어왔지만 오랜만에 산행에 따라나선 마누라를 모시고 30분만에 노고단고개에 도착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 ▼
▼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보자.. ▼
▼ 그러나 걸음은 천근만근, 성삼재까지 오른 도로 구간에서 이미 체력을 날린 것이 컸다.
마음은 급한데 오늘따라 노고단 가는 완만한 오르막이 무척이나 길고 힘겹게 느껴진다. ▼
▼ 정신없이 올랐지만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니 벌써 12시가 되었다.. ▼
▼ 노고단대피소는 정비공사로 깔끔하게 단장하고 있다. ▼
▼ 헥헥거리며 노고단고개 도착.
12시9분, 결국 성삼재에서 40분이 걸린 셈이다.
작년 이맘때 느긋하게 걸었어도 40분이 걸렸는데 오늘은 오르막 도로 1.3km를 서둘러 걸으며 힘을 뺐으니...
아니나다를까 국공 직원들이 길목을 막고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다!! ▼
▼ 피아골로 간다고 하니 다행히 통과를 시켜준다.
융통성있는 국공 직원 덕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멀리 반야봉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뒤로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출입 통제에 걸려 속절없이 되돌아 갔다고 한다. ▼
▼ 모든 긴장이 사르르 풀리며 갑자기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
한 가지 놀란 것은 마누라의 체력이다.
완만하긴 하지만 오르막길 4.6km를 50여분만에 거뜬하게(?) 오른 것이다. ▼
▼ 나머지 구간은 거저 먹는 편안한 길이다. ▼
▼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반야봉과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 보고. ▼
▼ 돼지령까지는 성삼재로부터 1시간20분 소요. ▼
▼ 피아골삼거리 도착.
성삼재로부터 1시간30분이 걸렸다.
그렇다면 작년 반야봉 갈 때와 거의 일치하는 페이스이다. ▼
▼ 피아골삼거리 부근에 앉아 30여분간 쉬며 허기를 채운다.
느긋하게 먹는 음식과 소주가 달다. ▼
▼ 시작은 고단했지만 남은 길은 오직 내리막이다. ▼
▼ 제법 가파른 길이지만 무릎을 아껴가며 천천히 내려간다. ▼
▼ 하산길 단풍은 그럭저럭.
특별히 감탄을 자아낼만한 그림은 아닌 것 같다. ▼
▼ 피아골대피소 도착.
피아골삼거리에서 5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 돌아본 피아골대피소. ▼
▼ 피아골대피소를 지나면 피아골계곡을 따라 완만한 등로가 이어진다. ▼
▼ 직전마을이 가까워지며 특유의 못된 성질(?)이 도지기 시작했다.
등산로를 꽉 채운 인파가 너무나 답답하고 거슬리기 때문이다. ▼
▼ 남명 조식이 극찬하였다는 삼홍소(三紅沼)도 대충 훑어보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64
▼ 수많은 등산객들을 추월하며 빠르게 걸어간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손목을 잘못 짚어 아프다는 마누라도 버려두고 혼자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
▼ 숨통이 트이는 넓은 길로 내려선 뒤에야 걸음을 멈추고 마누라를 기다린다.
뿔이 난 마나님의 눈치를 보며 싹싹 빌어야만 했다. ▼
▼ 확실히 나는 이런 산행지가 싫다.
좁은 등로를 꽉 메운 사람들, 돌길을 탁탁 치는 스틱 소리, 음악 소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 등등...
참을성 부족한 못된 소양(素養)의 내 탓임이 분명하지만 참기 어려운 것은 어쩌겠는가.. ▼
▼ 직전마을로 내려서며 산행은 4시간만에 종료되었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
마감시각까지 2시간반이나 남았으니 그저 여유로울 뿐이다. ▼
▼ 마누라와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며 직전마을을 구경한다. ▼
▼ KBS 인간극장으로 유명세를 탄 '피아골 미선씨'의 작은 왕국으로 변모한 천왕봉산장 식당에서 뒷풀이를 즐긴다.
산채비빔밥과 파전을 먹으며 최대한 여유를 부렸지만 아직도 1시간이 남았다.
다행히 산악회 일행들도 속속 도착하여 예정시각보다 20분 빨리 출발할 수 있었다.
시작은 눈코뜰 새 없었지만 마무리는 시간이 넘쳐났던, 애매한 느낌의 가을날 遊山의 하루를 그렇게 마감하였다. ▼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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