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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우리산 252(完)

288.전북 정읍 두승산(444m) 동학혁명의 불꽃이 피어난 호남정신의 寶庫(2021.2.20)

by 일신우일신1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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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 이 름 : 두승산 (斗升山, 300대명산/산림청 숨겨진우리산 288번째)
2. 위 치 : 전라북도 정읍시
3. 높 이 : 444미터
4. 산행일시 : 2021. 2. 20(토) 09:15-11:55 (2시간40분, 순수산행시간 2시간 이내)
5. 산행거리 : 5Km
6. 산행코스 : 두승사 → 끝봉 → 말봉 → 상봉(두승산 정상??) → 유선사 → 입석리
7. 동행자 : 마누라

 

 

-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컸던 두승산을 드디어 찾아간다. 정읍 숙소에서 불과 5-6km, 두승사에서 시작하여 동학혁명의 도화선이 된 만석보세(萬石洑稅)의 조병갑으로 유명한 고부관아터로 하산할 계획이다.

미세먼지로 탁한 날씨와 하산길 발톱 통증으로 애를 먹었지만 동학혁명의 불꽃이 피어난 위대한 민족사의 현장을 굽어보는 감동이 산행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하루였다.

 

- 최근 도올 김용옥의 동학 예찬론(?)과 동경대전 해설이 새삼 주목받고 있거니와 오래전부터 동학의 역동적 비극성에 깊이 매료되었던 나로서는 크게 박수를 보내는 중이다. 최제우를 '교주'로 칭하며 동학이 한낱 종교적 범주로 폄하되어 특히 배타적 기독교인들로부터 공격받는 것을 한편 안타깝고 답답하게 여기고 있었다.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동학의 민족종교적 프로파간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민중의 계몽 수준에 눈높이를 맞춘 표면적, 실천적 수단의 성격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창도자(唱道者)의 의지나 교리(敎理)와는 무관하게 시대적 부조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 이름없는 민초들의 장렬한 희생과 처절한 최후를 떠올리고 기억해야만 한다. 그 참뜻을 기리고 따라야만 한다.

각설하고 동학의 사상적, 철학적 기반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우리 민중의 이화세계(理化世界)의 열망과 대동세상(大同世上)의 비원(悲願)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니, 동학혁명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진정한 뿌리이며 세계사적으로도 주목해야 할 치열한 인류 미래정신의 남상(濫觴)이라 할 것이다.

 

- 두승산은 벼와 쌀을 계량하는 '말(斗)과 되(升)'의 산이다.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였던 호남평야의 역사를 상징하는 재미있는 이름인 셈이다. 

호남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두승산에 대한 소개는 아래 기사에 자세히 나와있다.

 

www.smgnews.co.kr/150834

 

≪새만금일보≫ 호남정맥 영산기맥의 정읍 두승산(斗升山, 443.9m)

두승산전경©새만금일보▶개요및자연경관예부터부안의변산,고창의방등산과함께호남의삼신산으로추앙받아온두승산은중국진나라때삼신산탐사표본

www.smgnews.co.kr

 

 

▼ 두승사에 주차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전봇대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정자가 있는 끝봉이다. ▼

 

 

▼ 무덤 오른쪽으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

 

 

▼ 봄이면 화사한 꽃터널이 만들어질 것이다. ▼

 

 

▼ 당겨본 만수저수지와 만수마을 일대. ▼

 

 

▼ 우측 끝봉을 거쳐 말봉으로 향하려 한다. ▼

 

 

▼ 끝봉으로 오르는 계단은 들머리인 두승사에서도 식별할 수 있다. ▼

 

 

▼ 정읍 시가지 쪽은 역광과 연무로 부옇게 사라져 버렸다. ▼

 

 

▼ 계단을 오르고 나면 끝봉 정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

 

 

▼ 정읍 시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정대로 어제 오후에 올랐더라면 좀더 나앗으려나? ▼

 

 

▼ 정자에서 바라본 두승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 ▼

 

 

▼ 응달에는 잔설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도 산행 내내 질퍽이는 구간은 거의 없어서 걷기 편안한 길이다. ▼

 

 

▼ 말봉 부근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말봉이 실제 두승산의 정상인 것 같은데 정상 표지가 상봉에 있어 조금 애매한 지위가 된 모양이다. ▼

 

 

▼ 망제봉, 바작산 방향 그림. ▼

 

 

▼ '두승산 461m'로 적혀 있다.

바위 위에 말(石斗)과 되(石升)의 모형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

blog.daum.net/sotte79/12821787

 

말 / 되

말 / 되 - 말박 - 됫박 이라고도 함. 2000.7. 소장   말 - [말박이라고 함] 곡용 - 척관법(尺貫法)에 의한 부피의 계량단위인 되[升]의 보조 계량단위로, 두(斗)라고도 한다. 1말은 10되에 해당하며 18ℓ(

blog.daum.net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1874∼1948)이 남겼다는 수두목승(水斗木升) 글귀가 선명하다.

일제 시기 전국의 산을 다녔다는 기인(奇人) 동초의 행적에는 (산행에서 삶의 위로를 얻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공감이 가거니와 마침 나와 같은 김해김씨 삼현파라 하니 짐짓 관심이 생긴다. ▼

taeinji.tistory.com/283

 

5.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동초(東樵) 김석곤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 1874년 ∼ 1948년)은  1874년(高宗 11) 12월 13일에 태인면(泰仁面) 태흥리(泰興里) 444번지에서 김해 김씨 진사(進士) 연추(演秋)와 여산 송씨 사이에서

taeinji.tistory.com

 

 

▼ 망선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길.

산세에 비해 망선대란 이름은 너무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

 

 

▼ 좌측 아래 도현초등학교, 가운데 숲이 있는 곳이 황토현전적지일 것이다.

오른쪽 파헤쳐진 황토는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동학혁명기념공원 일대이다. ▼

 

 

▼ 가야 할 상봉의 모습.

탁 트인 조망이나 역사의 흔적, 높이를 보더라도 이 곳 말봉이 두승산의 정상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할 것 같은데 특색없는 상봉에 정상 표시를 한 이유가 잘 납득되지는 않는다. ▼

 

 

▼ 두승산 정상으로 인정받는 상봉은 지척이다.

트랭글 뱃지도 이 지점에서 울렸다. ▼

 

 

▼ 가운데 아래 끝봉에서 왼쪽 말봉까지 이어지는 능선 전경. ▼

 

 

▼ 당겨본 끝봉의 모습. ▼

 

 

▼ 상봉을 지나서도 무명의 작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넓은 바위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장소이다. ▼

 

 

▼ 왼쪽 끝봉, 오른쪽이 노적봉이다. ▼

 

 

▼ 지나온 상봉과 말봉, 우측 아래 끝봉. ▼

 

 

▼ 돌아 본 무명 바위봉. ▼

 

 

▼ 유선사까지 완만한 산길이 이어진다.

테이핑으로 괜찮을줄 알았던 발톱이 한번씩 신호를 보내서 썩 즐거운 걸음은 아니다. ▼

 

 

▼ 시멘트 의자에 앉아서 빵 한 조각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

 

 

▼ 유선사(遊仙寺)의 모습.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라 한다.

- 유선사 : 정읍시 고부(井邑市 古阜)에서 부안(扶安)가는 국도를 따라 남복리(南福里)에 이르러 우편 두승산(斗升山) 가파른 산길로 3㎞쯤 올라가면 영주산(瀛州山) 정상에 유선사가 있다.

신라시대(新羅時代)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정상에서 신선이 놀다가 승천(昇天)하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나무를 꽂아 주며 그곳에 절을 지으라 하였다 한다. 지금의 절터는 북쪽 골짜기에 치우쳐 있는 셈이다. 그 절 이름이 유선사인 것이다. 그때 꽂아준 나무가 지금 있는 8그루의 귀목나무라고 한다.

유선사는 한때는 폐찰(廢札)되었다가 몇 차례의 중건을 거쳐 이조말엽(末葉)에는 두승사(斗升寺)라 부르기도 했으나 사세(寺勢)가 피폐되어 또 폐찰의 경지에 도달하였는데 1982년 비구니(比丘尼) 성수(性洙, 俗名 朴光順)가 계시(啓示)를 받아 입사(入寺)하여 많은 신도(信徒)들의 도움으로 본래의 약사전(藥師殿)을 헐고 대웅전(大雄殿)을 세우고 약사여래 석조입상(藥師如來 石造立像)을 세우며 3층(層) “스라브”요사(寮舍) 선방(禪房)을 지어 옥상(屋上)에 약사전(藥師殿)을 건립하여 절의 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전기와 전화를 갖추고 500m 정상까지 차도(車道)를 만들기도 했다.

대웅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八作) 집으로 다포계(多包系) 양식이다. 외삼포(外三包) 내오포(內五包)에 부연(副椽)을 달았으며 단청(丹靑)이 되었다.

불상(佛像)은 철불(鐵佛) 삼존상(三尊像: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을 1990년 영암(靈岩) 도갑사(道岬寺)에서 탱화와 같이 모셔왔다. 입상 약사여래불은 높이 18척이고 광배(光背) 오여래입상(五如來立像)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입상(立像) 미륵존상이 새겨져 있다.(정읍시청 홈페이지 참조)

 

 

▼ 고부관아터로 가려면 저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했던 것인데..

뒷편 이정표를 따라 무심코 걷는 바람에 의도치 않데 입석리로 하산하게 되었다. 

 

 

▼ 유선사의 명물 호랑이 조형물

 

 

▼ 멀리 좌중앙 쪽이 고부면인데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 이정표에 입석리라고 표시되어 있건만 무심히 넘기고 말았다

 

 

▼ 하산길이 고역이다.

내리막을 만나면 간혹 발톱 통증이 재발하여 한 걸음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마누라는 그러거나말거나 씽~ 앞질러 간다.

내가 가르친 업보(?)이니 서운할 것도 없는 우리 부부의 산행 방식이다. 

 

 

▼ 마을 도로에 이르러서야 잘못 내려왔음을 깨달았다.

온통 발톱 통증에 신경이 곤두서서 거의 무아지경으로 내려온 것이다

 

 

▼ 도로에 내려서니 긴장이 풀리며 오늘도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30여분이면 내려올 거리를 1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다. 

 

 

▼ 카카오택시를 불러 두승사로 복귀한 후 잠시 둘러본다. 

 

 

▼ 두승사에서 차량을 회수하여 고부관아터로 출발한다.

쓸쓸한 고부관아터에 실망하고 동학혁명기념관으로 이동하여 전시관을 둘러본 후 귀갓길에 올랐다.

260km 거리를 2시간40분만에 내달려 마누라와 약속한 동네 장어구이집에서 뒷풀이를 즐겼다.

그나저나 발톱이 아파서 우울하다.

말끔히 나으려면 두세달은 걸릴텐데...

당분간 새봄맞이 산행계획이 촘촘했건만 이건 뭐 무서워서 산을 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주말산객 데뷔(?) 10년만에 겪는 초유의 사태에 마음이 어지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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