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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여행기 제2편] 고구려 광개토호태왕과 장수왕 유적 탐방

by 일신우일신1 202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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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을 먹고 현지 시간으로 12시가 넘어 집안을 향해 달린다.

국도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5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단다.

단동에서 한 시간 정도를 달리니 압록강은 더이상 보이지 않고 중국의 시골길이 길게 이어진다.

 

-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고구려 유적지를 찾아 가는 길.

일제에 의해 철저히 말살되어 잊혀진 우리 민족 고대사의 숨겨진 비밀이 잠들어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또다시 왜곡, 은폐되고 있다.

일제가 단군 관련 자료 20만건 이상을 철저하게 파기, 소각한 사실마저 전혀 모르고 있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증사학을 주장하는 뿌리깊은 식민사관에 젖어 화려한 고대의 역사와 단군의 위대함을 신화나 미신 정도로 이해하는 우리의 역사 인식이 새삼 개탄스러울 뿐이다.

그리하여 집안을 향해 달리는 마음 속에는 설레임과 서글픔이 뒤섞여 흔들리고 있다.

 

 

▼ 압록강변에는 복숭아밭이 지천이다.

잠시 버스를 멈추고 길가 과수원에서 복숭아 몇 상자를 샀다. ▼

 

 

 

 

▼ 단동에서 3시간을 넘게 달려 잠시 쉬어간다.

길가에 화장실이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데 여자 일행들이 기겁을 하고 돌아 나온다.

남자 화장실은 아예 없고 들어가 볼 수도 없어 자세한 설명을 옮길 수는 없지만,

여하튼 대부분의 여성들이 참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표지판을 보니 집안까지 74km가 남았다.

한 시간이면 가려나 했더니 이 거리가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

 

 

 

 

 

 

▼ 4시간 넘게 달리고 나니 다시 압록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인 것이다. ▼

 

 

 

▼ 강 좌측에 집안 시내가 보인다.

강 우측은 당연히, 북한 땅이다!!.. ▼

 

 

▼ 집안 시내로 들어서는 다리를 건넌다.

저너머 산자락은 모두 금단의 우리 땅이다. ▼

 

 

▼ 달리는 버스 안에서 운좋게 찍었다.

이것이 바로 고구려 국내성 성벽인 것이다.

이 엄청난 유적이 동네 잔디밭 속에 방치되어 있다. ▼

 

 

 

▼ 집안은 작은 시골 도시이다.

저녁 시간이 늦어져 가이드가 식사 장소를 물색해 봤지만 우리 일행 38명이 들어갈 식당이 없는 정도여서 계획대로 통화에 도착할 때까지 허기를 참기로 했다. ▼

 

 

▼ 드디어 광개토호태왕릉 입구에 도착했다.

단동에서 정말 5시간이 꼬박 걸렸다.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6시반, 벌써 해가 넘어 가고 있다. ▼

 

 

▼ 광개토호태왕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

 

 

 

 

▼ "호태왕비"라고 적혀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보물 1호라고 할 광개토호태왕비. 서기 414년에세워진 이 비는 서기 1,145년에 발간된 삼국사기를 무려 700년이나 앞설 뿐 아니라 중국의 동북3성은 물론 내몽골, 산서, 하북성에까지 미치었던 고구려의 위세와 드넓은 강역을 생생히 증언해 주는 유일무이한 고대사의 기록이며 이 비가 서 있는 압록강 너머 집안(集安)은 그 옛날 고구려 제2대 유류왕에서부터 제11대 동천왕까지 245년간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자리로써 이 지역 일대가 우리의 영토였음을 증명하는 명백한 역사적 물증이다.) ▼

 

 

▼ 전각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치사하고 아니꼬운 생각이 든다. 얼마든지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지만 현지 조선족 가이드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참고 말았다. ▼

 

 

 

 

 

 

 

 

 

▼ 멀리 호태왕릉을 오르는 따른 일행들이 보인다. ▼

 

 

 

 

 

▼ 이 허름한 돌무더기가 광개토호태왕릉이다... ▼

 

 

▼ 이하 사진들은 왕릉 위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들. ▼

 

 

 

 

 

▼ 압록강 건너 북한 땅도 줌으로 당겨 본다.

녹색으로 보이는 저 산들이 겨울이면 황량한 민둥산으로 변한다고 한다.

나무는 없고 온통 풀과 농작물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

 

 

 

▼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플래쉬를 터뜨렸다.

호태왕의 영면을 방해하는 불경한 짓이었을까? ▼

 

 

 

▼ 저 돌들을 바로 옆 동네 주민들이 줏어다가 집 담벼락으로 썼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 우리가 광개토대왕으로 부르는 그의 본명은 담덕(談德)이다. 그의 완전한 묘호(廟號)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이를 줄여서 광개토대왕, 또는 호태왕으로 부른다. 호태왕은 주로 중국에서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재위시 칭호는 영락대왕(永樂大王)이었다. '영락(永樂)'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최초의 연호로 알려져 있다.

 

- 우리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 위대한 태왕의 이름을 광개토호태왕, 최소한 광개토태왕으로 불러야 한다. 중국인들마저 왕중의왕 태왕으로 부르는데 우리가 광개토대왕으로 부르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

 

 

 

 

 

 

  

 

 

 

 

 

 

 

 

 

 

 

 

 

 

 

 

▼ 다시 버스를 타고 5분여를 이동하여 중국인들이 장군총으로 부르는 장수왕릉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 사위에는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다. ▼

 

 

 

 

 

▼ 집안(集安)에 남아있는 만 2천여개의 묘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능으로 거대한 크기와 빼어난 조형미를 갖추어 동방의 금자탑으로 불리우는 장수왕릉은 현지에서는 장군총으로 불리운다. 

- 밑변의 길이가 32미터,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피라미드형 방단계단적석묘(方壇階段積石墓: 돌을 계단형식으로 네모지게 쌓아올린 형태의 무덤)로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길이가 5.7미터인 엄청난 크기의 화강암 1100여개를 계단식으로 쌓아올렸다. 정면은 국내성 (集安)을 바라보는 서남향이며 네 귀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석실 안 석관의 머리 방향이 53도로 북동쪽에 있는 백두산 천지 (白頭山 天池)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 적석총을 둘러싼 3개의 거대한 받침돌(護石)이 보인다. 받침돌(호석)은 돌을 쌓아 올린 무덤이 빗물이나 기타 외부압력에 인하여 밀려나거나 무너짐을 방지하기위해 세운 것으로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한 면에 3개씩 4면에 총 12개가 있다.

십이지신상의 기원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현재는 그 중 하나가 없어졌다고 한다. ▼

 

 

 

 

 

 

▼ 이것이 장수왕릉 옆에 떨어져 있는 배총(陪塚)이다. 
배총은 본래 이 장군총의 네 모서리 방향에 있어 피라미드의 스핑크스처럼 수호신을 상징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이것 하나만 남아 있다. 전형적인 고인돌 형태의 모습이 이채롭다. ▼

 

 

▼ 이미 플래쉬를 터뜨려야 할만큼 날이 어두워져 버렸다.

서둘러 통화까지 또 두 시간을 더 이동하여야 한다. ▼

 

 

 

 

 

▼ 고구려 유적지를 처음 둘러본 소감은 따로 적지 않으려 한다.

말문이 막혀 별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라면 아래 안내글을 읽어 보는 것으로써 나의 황망한 소감을 모두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

 

 

▼ 주린 배를 움켜쥐고 통화까지 이동한 후 늦은 저녁 식사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삼겹살 무한 리필에 소주도 제법 거덜이 났다.

통화시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현지 시각 11시 반.

호텔에 짐을 풀고 대충 씻었지만 첫날을 그냥 보낼 수야 있나.

친한 이들 네 명이서 호텔 옆 강가의 맥주집에서 또 한 잔 마신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들었지만 다음날 모닝콜은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울렸다.  ▼

 

 

- 내일은 백두산 북파 코스를 향해 또 한참을 이동해야 한다.

광개토호태왕과 장수왕이 잠든 석관 속에서나마 그 모두의 머리를 북동쪽 53도 각도로 정확히 지향한다는 그 곳.

그리하여 절대 중국의 역사 속으로 편입될 수 없는 결정적 증거의 중심, 우리 조상들의 영원한 성지였던 그 곳.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白頭山 天池)를 드디어 만나러 가는 것이다.

 

(백두산 북파 코스와 드디어 만나게 된 천지, 장백폭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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